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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원고는 내일의 피고가 될 것이다.
[문화] Contents  |  2006/07/18 22:23

센티멘탈은 혁명의 적이요, 혁명의 힘이다.


내가 돈이 있었으면, 응?
내가 돈이 있었으면!
나한테 당신들만큼 돈이 있었으면!
내가 지은 죄는 죄도 아니야, 이 개새끼들아!
[문화] Contents  |  2006/07/17 01:28

내가 너무 까칠한 탓일까.
아무런 감흥도 없이 '모든 폭력은 똑같다'는 김선주의 절규만이 맴돌았다.
영화는 잔인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으나 다만 불편했다.
[문화] Contents  |  2006/07/09 19:03

'김장섭+이광기+김진수' in 충무아트홀



집에 돌아오면서
곰곰히 시놉시스를 곱씹어보다가

저 세 역할에는
누구라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저 셋 중 어느 전형에 속하는
인물은 아니다.
[문화] Contents  |  2006/07/07 23:01


[문화] Contents  |  2006/06/29 23:38


보고 싶었던 영화를 적어놓고 보고 있는 참인데,
뒤늦게 이 영화를 목록에 넣었다가 씁쓸해 하는 참이다.

클래시컬한 비주얼을 보고 이 영화를 선택한다면 낭패.
추리극 플롯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은 아니다.

사건의 발생인 윌리암이 살해되는 것도 영화 중반을 넘어서.
1930년대 영국의 매력을 영화 내내 지켜보는 건 지루한 일이다.

상류 사회와 하인들의 절도있고도 복잡한 관계들이 주된 관심사이고,
실상 살인사건은 영화의 주요 타겟은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가 4년 전 각본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에 경악해야했다.

노장의 알트만 감독 특유의
늘어지고(로저 에버트의 표현대로는 '관대한'), 저급한 냉소가
쓴웃음을 지게 하는 작품.

[문화] Contents  |  2006/06/26 01:27

믿을 지 모르겠지만,
당신 때문이 아니에요.

이미 날 좋아할 수 없다고
말했잖아요.
[문화] Contents  |  2006/06/25 04:55


John Nash : You see... l am crazy.
                     l take medications.
                     l still see things that is not real.
                     l Just choose not to acknowledge.
                     l could die after mad.
                     l choose not to and indulge certain appetites.
                     Like my appetite to patterns.
                     Perhaps my appetite to imagine, to dream.

Professor Nash.
lt's good to have you here, John.
lt's an honour, sir.

John Nash : Thank you very much.

A privilege, professor.
Professor.

John Nash : Thank you.
                    Thank you there.
                    That is most certainly unexpected.


학문의 낭만
[문화] Contents  |  2006/06/25 02:06











일종의 부채감을 가지고 봤는데
전공자여서인지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저 수많은 fact가 가당찮은 fiction들로 혼잡해져 있었다.

내용의 조악함과는 대조적으로
내겐 너무 웅장했던 배경음악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귀에 거슬렸다.

살찐 레옹을 보며 서글퍼졌고,
톰 행크스는 휴고보스 수트가 잘 어울렸지만
잔망스럽지 않은 오드리 토투는 한 번에 알아보기 힘들었다.

어려우려면 머리를 쥐 뜯을 정도로 철저히 어려워지던가
아니면 좋아하는 비라도 좀 내려주든가 << 내 취향;;

걸핏하면 사람이 죽어나가고
죽은 자와 진배없는 산 자가 등장하는
실상 엽기적인 영화임에도
그 잔혹함마저 느껴지지 않는 참으로 애매한 영화.
[문화] Contents  |  2006/06/24 01:40































빠삐용은 앙리 샤리엘(Henri Charriere)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각색된 73년작이다. (한국에는 74년 개봉되었다) 1931년 빠삐용이 포주 살인혐의로 기아나 형무소로 이송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이 영화 자체가 샤리엘의 자서전을 토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가 실제로 살인을 한 것인지, 아니면 영화의 표현대로 ‘결백’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빠삐용이 살아가야 했던 1920~1930년대의 프랑스는 양차 세계대전의 사이에서 전쟁의 맹아가 눈을 뜨고 있는 시기였고, 독일에서는 나치가 힘을 얻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당시 범죄자들은 급박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회의 짐이거나 혹은 제거되어도 무방한 존재에 불과했다. 사회는 그들을 감당할 만한 여유도,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범죄자들을 악명 높은 프랑스령의 기아나 형무소로 이송한다는 것은, 프랑스령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그들을 프랑스로부터 추방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영화에서도 주지하듯이, 프랑스는 그들을 ‘버렸다’.

사실 그 자체로 빠삐용은 모든 희망을 버릴 만 했다. 만일 그가 보다 정치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면, 다시 말해 샤리엘이 보다 이성적으로 사회를 주시할 수 있었다면, 그는 온당히 그 희망을 버렸어야 옳았을 것이다. 프랑스 사회는 그들의 복귀를 원하지 않았고, 그들이 돌아가기에 프랑스는 너무 멀리 있었다. (기아나는 남미에 있다) ** 기아나에서 그들은 혹독하게 착취당하였지만, 사실 그들은 그리 생산적인 인력은 아니었다.

실상 빠삐용의 모태가 되는 샤리엘이라는 인물은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살인이 단지 잘못된 혐의였다 하더라도) 그는 교양 있는 교사의 집안에서 일탈한 망나니 자식이며, 잡다한 비행을 일삼다가 살인 혐의를 쓰고 기아나에 이송되어진 것뿐이다.

그 미련한 희망으로 14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희망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었던 그는, 나비처럼 푸른 바다에 몸을 던져 마침내 자유를 획득했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그 자유만을 간절히 꿈꾸었을 뿐. 오직 그만을 위한 자유. 샤리엘은 그렇게 힘든 자유를 얻은 후에도 죽을 때까지 그 치졸한 비행을 일삼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유만을, 오직 자유만을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는 그가 왜 살인 혐의를 쓰게 되었는지, 또 그가 그토록 힘들게 얻었던 자유가 어떻게 쓰여졌는지는 말이 없다. 단지 그의 집념의 유배생활만을 아름답게 그려냈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그리고 빠삐용처럼 독방에 갇힌 자는 아니지만, 누구나 자신에 갇혀 있다.

샤리엘은 자유를 찾아서도 인생을 허비한 죄를 갚을 수 없었다. 여전히 그는 유죄이다.

[문화] Contents  |  2006/06/21 02:06